> Chapter 0. 쓰레기장의 아이
> Chapter 0. 쓰레기장의 아이
「존 제로」의 밤은, 어둡다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음침함을 지니고 있다.
갑판 위는 혼돈의 정적 속에 잠들어 있다. 어디에나 널려 있는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의 흔적이 아니라, 더는 누구의 손길도 필요치 않게 된 것들─── 썩어 문드러져 악취를 풍기는 음식 찌꺼기들, 세월이 지나며 색이 바래고 촉감마저 모호해진 옷조각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흙더미와 그 사이사이에 흩어진 차갑고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이 아무 말 없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천장을 덮고 있는 유리 돔은 그동안 수없이 버텨온 구조물이다. 육안으로 보아도 틈이 벌어진 곳이 많고, 그 사이로 금이 얽혀 있다. 아직까지는 유독 가스가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실은 누구나 마음 한구석으로는 같은 생각을 품고 있다. 이 유리가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돔 너머로 보여야 할 밤하늘은 별빛으로 가득 차 있어야 마땅하지만, 그 자리를 대신한 건 검은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연기 뿐이다. 한때 인류가 정복하였던 밤하늘은 더이상 인류를 환영하지 않는다.
나는 헤븐즈 레일의 선원이자, 존 제로에 살고 있는 주민이기도 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이곳에 있었고, 단 한 번도 이 층을 벗어난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처음 본 하늘은 금이 간 돔 너머의 검고 푸른 연기였고, 내가 처음 디뎠던 땅은 오래된 금속판과 쓰레기 더미였다. 어떤 이들은 이곳을 쓰레기장이라 부르고, 어떤 이들은 그냥 죽지 않은 자들의 무덤이라 부른다고 한다. 나에겐 둘 다 틀리지 않다. 이 쓰레기 더미 위가 나에게는 세상이자 전부이다.
어머니는 가끔, 아니, 제법 자주 「슈뢰딩거의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그녀에게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마치 헤븐즈 레일을 수호하는 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유일무이한 정부로서 무너져가던 체계를 정비했고, 지금도 저 커다란 항해선을 지탱하며 조용히 방향타를 잡고 있다고─── 어머니는 그렇게 믿는다. 하지만 나는 가끔 의문이 든다. 과연 그 슈뢰딩거의 고양이에게 있어서 “우리” 는 정말 같은 인간으로 보이기나 하는 걸까. 우리가 그들의 시야 안에 있다고, 보호 아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걸까.
> Chapter 1. 인간보다 더욱 인간다운
헤븐즈 레일에 거주하는 인간의 수는 대략 삼천 명 남짓이라 한다. 피부색도, 언어도, 원래 살던 땅도 제각각이지만, ‘국적’ 이라는 말은 이곳에선 이미 오래전에 그 의미를 잃었다. 나 역시 그중 하나다. 태어난 그 순간부터 이 배 안이 곧 세계였고, 내가 태어났다고 적힌 나라에 대해선 이름은 커녕 존재 자체를 들은 기억조차 없다. 어쩌면, 그 나라라는 것은 이제 지도 위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수는 삼천이지만, 그에 못지않게──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을지도 모를──비오스들이 이 배 안을 메우고 있다. 인간을 본떠 만든 안드로이드, 혹은 인공 휴먼이라 불리는 존재들. 겉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그 뿌리는 같다. 전부 슈뢰딩거의 고양이의 손에서 만들어졌고, 그의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 어떤 개체는 너무나도 인간 같아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 뻔한 적도 있다. 반면, 어떤 비오스는 그 차가운 눈빛 하나만으로도 인간과는 도무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든다.
그들이 우리를 24시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다. ‘보호’ 라는 단어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감시가 진심으로 우리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는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면, 쓰레기장의 주민들에게 끝없는 공포를 심어두기 위한 수단일지도 모른다. 쓰레기장──존 제로──를 넘어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철제 덩어리들이 사방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마치 우리가 언제든 잘못될 수 있는 위험 요소라도 되는 듯이.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감시를 수행하는 저 고철 덩어리들이 대체 무엇이기에 인간을 감시하고 있는 걸까.
이쯤 되면, 정말로 묻게 된다. 감시하는 쪽과 감시받는 쪽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인간’ 에 가까운 존재인지를.
그래서일까. 나는 때때로 비오스의 수가 현저히 적은 존 제로에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런 생각이 바뀌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이웃집 찰스 씨의 피부가 지병으로 서서히 썩어가는 걸 볼 때마다, 여긴 살아 있는 인간이 점점 죽어가는 곳이란 생각이 들고,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 Chapter 2 . 복잡한 증명의 세계
일주일 전, 구역을 담당하는 비오스가 우리에게 통보를 전달했다.
잔뜩 예의를 차린 듯 보이는 이 통지문은, 언뜻 보기에는 우리를 높여주고 존중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반강제로 끌려가 실험 대상이 되는 신세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어머니께 말씀드리자, 그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였다. 하지만 결국에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라면 분명 그만한 목적이 있을 거라며, 몇 번이고 나를 다독이듯 그렇게 말씀하셨다. 정작 그 말을 가장 믿고 싶어했던 것은 그 자신인 것 같지만⋯⋯.
「무한절단 정리」와 「페르톤」에 대해서는 존 제로에 거주하는 나조차도 어느 정도의 정보를 접한 바 있다. 두 용어 모두 현재 헤븐즈 레일에서 진행 중인 인간 기반 차세대 자원화 연구의 핵심 개념으로 분류된다. 현 시점에서 인류가 확보한 자연 자원은 거의 소진 상태이며, 헤븐즈 레일 내에서 생산 가능한 인공 자원 또한 기술적, 물리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헤븐즈 레일 소속의 생명공학 및 이론물리학의 학사들──실질적으로는 슈뢰딩거의 고양이 산하 연구진──은 새로운 형태의 내부 자원 확보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주목된 것이 인간 개체 내의 세포 구조, 특히 가장 최근에 발견된 「페르톤 세포」다. 이 세포는 고밀도 에너지 흡수 구조를 지니며, 특정 조건 하에서 급속한 분열 및 자기복제 반응을 유도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이를 기반으로 정립된 이론이 바로 「무한절단 정리」다. 해당 정리는 기존의 유전자 증폭 개념과 줄기세포 유도 기술을 결합하여 인위적으로 세포 분열 속도를 무한에 가깝게 가속시킴으로써, 인체로부터 고차원적 능력──이른바 「프라임」──의 발현을 유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진화를 넘어, 인간을 자원화 가능하고 통제 가능한 상위의 존재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고, 존 제로의 폐가 옆에 버려져 있던 신문에 적혀 있는 것을 본 기억이 있다.